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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에서 대한제국 몰락까지 1.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의 발발1894년, 조선 사회는 극심한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지방에서는 탐관오리의 부정부패가 심화되었고, 백성들은 과도한 세금과 수탈에 시달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들은 억압과 고통에 저항하며 봉기했다. 이것이 바로 동학농민운동, 또는 갑오농민전쟁이다. 동학은 하늘과 인간이 하나라는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한 종교였으며, 민중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농민군은 부패한 관리의 축출과 사회 개혁을 요구하며 전국 각지에서 봉기를 일으켰고, 그 기세는 관군을 위협할 정도였다.조선 정부는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어 청나라에 군사적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를 구실 삼아 일본도 군대를 파병하며 조선에 개입했고, 결국 조선 땅에서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가 충돌하는 청일전쟁이 발발하였다.. 2022. 11. 9.
조선 말기 쇄국과 개항, 흥선대원군의 개혁과 몰락 1. 혼란한 조선, 세도정치와 민란의 시대정조가 죽은 뒤 조선은 중심을 잃었다. 왕권은 약화되었고, 정치는 안동 김 씨와 같은 몇몇 유력 가문이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이들은 권력을 이용해 관직을 돈으로 사고팔았으며, 지방관들은 자신이 산 관직 값을 농민들에게서 거두어들였다. 수탈은 심해졌고 백성들은 삶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백성의 원성은 쌓였고,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삼정의 문란(전정·군정·환곡)은 조선 사회 전반을 마비시켰고, 나라 전체가 위태로운 상황에 빠졌다.이러한 위기 속에서, 한 인물이 조선을 구하고자 등장한다. 그는 바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다. 이하응은 왕족이었지만, 인조의 넷째 아들 인평대군의 후손으로 왕위 계승권에서는 한참 밀려 있었다. 하지만 조선에는 아들을 입양해 가계를 .. 2022. 11. 2.
숙종과 영조의 정치적 갈등과 탕평책 1. 숙종의 환국과 정치적 갈등숙종은 끊임없는 정치적 갈등과 권력 투쟁 속에서 나라를 다스렸고, 그로 인해 조선 후기 정치의 주요 특징인 붕당 정치가 더욱 복잡해졌다. 숙종은 여러 차례의 환국을 통해 각 붕당 간의 경쟁을 부추기며,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특히 장희빈의 아들인 윤은 소론의 지지를 받아 세자 자리에 오르며, 숙빈 최 씨의 아들 연잉군은 노론의 지지를 얻어 두 세력이 정치적으로 맞붙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현왕후가 사망하고 세 번째 왕비인 인원왕후에게서도 왕자가 태어나지 않으면서 정치적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숙종 사후,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은 건강이 악화된 숙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맡았다. 그러나 경종의 즉위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경종은 소론과 협력하여 국정을.. 2022. 11. 2.
숙종의 정치적 갈등과 붕당의 변천 1. 효종의 대의명분과 왕권 강화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봉림대군은 효종으로 즉위했다. 효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정치적 접근 방식을 취했다. 그는 자신의 통치 아래 산림(사대부 계층)들을 중용하며 정치를 이끌었다. 이 시기에 송시열, 윤휴 등 조선 후기 붕당의 중심인 관료 집단이 점차 조선 정계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그 당시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대북파가 정권을 장악했으나,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북인은 사실상 소멸되었다.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경쟁은 인조, 효종, 현종 시기를 거쳐 본격화되었다.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관료들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국제 질서에 적응해야 했다. 당시 명나라의 국력이 약화.. 2022. 11. 1.
조선의 내외 정치 변화와 병자호란 1. 일본과 여진족, 명나라의 쇠퇴와 조선의 외교 변화16세기 후반, 일본은 에도막부 시대를 맞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치적 안정 속에서 재통일을 이루었다. 여진족은 이 시기에도 꾸준히 성장을 계속하며, 명나라의 쇠퇴와 더불어 점차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다. 명나라의 정세는 불안정했고, 특히 여진족의 성장과 함께 내부적으로 분열이 심화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은 새로운 국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외교 관계를 재정비해야 했다.조선은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여진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성계 휘하에 여진족이 속할 정도로 두 나라는 강한 교린 관계를 맺었다. 교린 관계란, 조선이 국왕의 이름으로 여진족의 추장에게 관직을 주며 일정한 종속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여진족의 금나라 멸망 이후,.. 2022. 11. 1.
중종과 임진왜란: 정치적 갈등과 전쟁의 영향 1. 중종의 즉위와 초기 정치적 혼란연산군의 폭정으로 인해 결국 왕위에서 쫓겨난 후, 연산군의 12살 아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이 중종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중종은 사실 반정 세력의 힘을 입고 즉위한 것이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했다. 반정으로 즉위한 중종은 처음에는 왕권이 약한 상황에서 시작했다. 즉위 직후, 중종은 자신이 국정을 주도하지 못하고 반정 세력의 영향 아래서 통치를 하게 되었다.이들 반정 세력은 대부분 훈구파에 속한 인물들이었으며,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강했다. 훈구파는 조선 초기부터 국정에 깊은 영향을 미친 세력으로, 중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도 계속해서 국정을 주도하며 중종의 왕권을 제약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종은 권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하였다.중종은 훈구파의.. 2022.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