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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아요.

무로마치 막부 시대 중세 일본의 정치 혼란과 문화 융성

by heimish_ddd 2025. 5. 4.

**무로마치 막부 시대(1336~1573)**는 일본 중세사에서 가장 정치적 격동문화적 창조가 공존한 시기로,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가 건립한 무사 정권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전반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뉘며, 각각 남북조 시대(1336~1392), 아시카가 막부의 전성기, 그리고 **전국시대(戦国時代)**로 이어지는 말기로 구분됩니다.

무로마치 막부는 교토의 무로마치 거리에 정청을 두었기에 붙은 이름이며, 가마쿠라 막부와 달리 귀족 문화와의 연계, 무사 권력의 중앙 집중, 그리고 지역 호족의 자율성이 복잡하게 얽힌 체제였습니다. 이 시기 일본은 정치적 분열과 내전, 경제·문화의 도시화, 그리고 불교와 예술의 대중화를 겪으며, 중세 일본의 핵심 틀을 확립하게 됩니다.

1. 남북조 분열과 무사 권력의 이중 구조

무로마치 막부의 시작은 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한 고다이고 천황의 **겐무 신정(建武の新政)**에 반발한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카우지는 **고다이고 천황의 남조(南朝)**와 대립하며 북조(北朝)의 다른 천황을 내세우는 이중 황실 체제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일본은 약 60년간 남북조 시대라는 내전에 빠지게 됩니다.

1392년,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満)에 의해 남북조가 통일되며 정세는 잠시 안정되지만, 막부는 중앙 정부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채 지역 다이묘(大名)의 독립성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슈고 다이묘(守護大名)**라 불리는 지방 무사들은 각 지역에서 군사·행정권을 행사하며 자치적인 권력을 키웠고, 이는 결국 전국시대의 불씨가 됩니다.

이와 같은 권력의 이중 구조와 분산적 통치는 무로마치 막부의 한계였으며, 막부가 교토에서 중앙 정치를 주도하는 동안에도 지방에서는 자율적인 무장 세력이 꾸준히 성장해, 일본 전국 각지에서 분권적 봉건 체제가 강화되었습니다.

2. 아시카가 요시미쓰와 무로마치 문화의 황금기

무로마치 막부 중기, 특히 제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재위 1368~1394) 시기에는 정치적 안정과 함께 문화의 융성과 국제 교류의 활발 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남북조를 통일하고, 중국 명나라와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여 **감합무역(勘合貿易)**을 전개하면서 막부의 재정과 권위를 크게 높였습니다. 이 시기 교토는 일본의 정치·문화 중심지로 다시 떠오르게 됩니다.

문화적으로는 **선종(禅宗)**의 영향 아래, 단아하고 절제된 **무로마치 문화(室町文化)**가 꽃피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금각사(鹿苑寺, 킨카쿠지)**와 **은각사(慈照寺, 긴카쿠지)**의 건축이며, 이는 일본식 정원, 선종 건축, 미적 감각의 정제를 상징합니다. 특히 노(能)와 교겐(狂言), 가노파 회화(狩野派), 다도(茶道) 등 일본 전통 예술이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시기도 이 무렵입니다.

또한, 서민 계층에서는 **렌가(連歌, 연작시)**와 같은 집단 문학이 유행하며, 문화의 대중화 현상이 가시화되었고, 교토를 비롯한 도시 지역에서는 상업과 수공업, 도시 공동체의 성장도 눈에 띄게 발전했습니다. 이는 일본 문화의 기초가 귀족 중심에서 서민층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였습니다.

3. 오닌의 난과 전국시대의 서막

무로마치 막부는 외형상 번영을 누렸지만, 내부적으로는 점차 취약해졌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1467년부터 1477년까지 벌어진 오닌의 난(応仁の乱)**입니다. 이는 제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의 후계 문제와 주요 슈고 다이묘들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대규모 내전으로, 교토 전역이 불타고 무로마치 정권의 실질적인 통제력도 상실되었습니다.

오닌의 난 이후 막부는 명목상 존재만 할 뿐 실질적인 정치 기능은 거의 정지되었고, 일본은 **각 지방 다이묘들이 각축을 벌이는 전국시대(戦国時代)**에 진입합니다. 이 시기의 다이묘들은 자기 영지를 군사적으로 방어하고, 농민을 무장화시켜 자치적 통치를 실시하였으며, 서로를 제압하고 권력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등장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 같은 인물들이 점차 전국을 통일해 가면서 무로마치 막부의 종말과 에도 막부 시대의 도래가 예고됩니다. 최종적으로 1573년, 오다 노부나가가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를 교토에서 추방하면서, 무로마치 막부는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결론: 무사의 시대에서 다이묘의 시대로

무로마치 막부 시대는 일본이 귀족 중심의 정치 질서에서 무사 중심의 봉건 사회로 이행한 과도기로서, 정치적 혼란과 문화적 번영이 공존한 시기였습니다. 남북조 내전, 슈고 다이묘 체제, 오닌의 난, 그리고 전국시대의 개막은 일본 정치사에 있어 큰 구조 변화를 상징하며, 이후 에도 시대까지 이어지는 봉건 제도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동시에 이 시기는 일본 고유문화가 본격적으로 정립되고, 선종을 중심으로 한 무사 문화, 예술의 절제미, 다도와 노가쿠, 일본식 정원 양식 등 다양한 문화 자산이 형성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무로마치 시대의 문화는 오늘날에도 일본 전통문화의 핵심 유산으로 간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