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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아요.

빛과 문화·경제가 어우러진 홍콩

by heimish_ddd 2025. 6. 15.

1. 빅토리아 항구가 품은 역사와 정체성

홍콩을 처음 바라볼 때 많은 여행자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단연 빅토리아 항구다. 해가 지면 광안의 마천루가 일제히 네온사인을 밝히고,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시작되는 순간 침사추이 부두는 셔터 소리로 가득 찬다. 이 화려한 야경은 홍콩 여행의 상징이 되지만, 그 이면에는 19세기 말 제국주의의 거친 소용돌이와 무역, 이주, 혁신이 뒤얽힌 깊은 역사가 흐른다. 홍콩 역사를 들여다보면,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난징조약이 이 지역의 운명을 뒤바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적한 어촌이었던 이 땅은 영국령이 되면서 동서 교역의 관문으로 거듭났고, 이후 150여 년간 ‘자유항’이라는 이름으로 자본과 사람, 사상이 쉴 틈 없이 왕래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영국은 중세적인 성벽 대신 고층 창고와 부두를 세웠다. 예전 네이선로드를 따라 늘어선 전통 상점들은 1970년대 고도 성장기에 쇼핑몰과 은행 본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홍콩은 단순한 식민지의 틀을 넘어 ‘중화권의 서쪽 관문’이라는 위치를 자각했고, 광둥어 문화와 영국식 행정·교육 시스템이 혼합되면서 지금의 복합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광둥어는 거리의 소리와 영화 속 대사를 채우고, 영국법은 금융·형사 절차의 기초가 되었다. 서양식 전신주 아래에서 증권 시세표를 읽던 상인들은 중국 본토에서 넘어온 이민자들과 어울려 새로운 상권을 개척했다. 이처럼 홍콩 정체성은 신분과 국적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에서 시작해, ‘기회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는 도시의 기질로 발전했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은 중국으로 귀속되며 ‘일국양제’라는 실험에 들어섰다. 그날 빅토리아 항구에는 영국 왕실 해군기가 내려가고 오성홍기가 올랐지만, 도시가 보존하려 한 가치는 자본 이동의 자유와 법치였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홍콩은 여전히 국제 금융 도시이지만 사회적 논쟁과 민주주의,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홍콩대와 중문대의 젊은 세대들은 광장 토론과 전시회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언론은 도시가 나아갈 방향을 치열하게 모색한다. 이러한 풍경은 여행자들에게 홍콩 야경 못지않게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여행길에 만나는 서점 한켠의 정치 만화,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 바라본 저녁 노을 사이로 번지는 도시 불빛은 고층 빌딩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빅토리아 항구 주변에는 여전히 양조장 자리를 리모델링한 갤러리, 19세기 창고를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PMQ’, 역사적 흔적을 간직한 어퍼라스카도르 빌딩 등이 공존한다. 스타페리 터미널에서는 1920년대와 거의 달라지지 않은 목조 의자에 앉아 홍콩섬과 구룡을 오갈 수 있다. 작은 배가 칠흑 같은 물살을 가를 때, 한 세기 동안 이어진 상인의 목소리와 항구의 냄새, 그리고 대륙과 섬을 잇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홍콩의 빅토리아 항구는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역사와 정체성의 압축 파일’이라 할 만하다.

2. 초고밀도 도시가 구현한 경제·기술 혁신

홍콩 섬 면적은 서울 강남구보다 조금 넓고, 구룡반도 역시 30평 아파트 한 칸처럼 빽빽하다. 그러나 이 좁은 땅은 세계 3위권의 금융 자금, 글로벌 홍콩 경제 뉴스가 하루도 쉬지 않고 거래되는 ‘24시간 오픈 마켓’이다. 도시밀도가 높아질수록 불편함 대신 효율이 발휘됐고, 홍콩은 ‘작지만 빠른’ 시스템으로 성장했다. 증권 거래소 전광판에는 런던과 뉴욕, 상하이를 잇는 실시간 호가가 흐르고, 센트럴 거리의 스카이라인은 해마다 재편된다. 이런 성장 배경에는 국제통화제도(IMF 체제)에 편입된 조세·관세 제도의 간결함과 영국식 상법이 있다. 법률 서비스는 영어·광둥어·만다린 삼중 언어 시스템으로 제공되며, 세계 곳곳의 변호사와 회계사가 밤낮없이 출입국한다. ‘낮에는 로펌, 밤에는 딤섬집’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홍콩 금융가는 작은 면적 안에서 극도의 업무 집중과 휴식이 교차한다. 또 다른 특징은 스타트업 투자 환경이다. 사이버포트, 홍콩과기대(HKUST) 인큐베이터, 샤틴 과학단지 등은 아시아의 젊은 기업가를 끌어모으고 있으며, 핀테크와 그린테크, 바이오테크 분야에서 ‘홍콩발 유니콘’의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관광 측면에서도 홍콩은 경제 혁신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다. 디즈니랜드, 오션파크 같은 테마파크뿐 아니라, 홍콩 야시장과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골동품거리 캐슬로드 등의 소소한 골목 풍경이 여행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셩완의 태평산로에는 1960년대 한약방 간판과 21세기 카페가 공존하고, 소호의 언덕길에는 스페인 타파스바와 광둥 딤섬집이 나란히 자리한다. 이 모든 요소가 ‘초고밀도 팝업 도시’라는 별칭을 탄생시켰다. 최근 홍콩 정부는 스마트시티 블루프린트를 발표하며 5G·IoT·AI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심 사물인터넷 센서와 통합 교통체계는 출퇴근 시간을 단축시키고, 헬스케어 스타트업은 고령화 사회 대비 의료서비스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동시에 항만 물류 자동화와 탄소중립 항만 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다. 전통과 혁신이 동시에 진행되는 이 변화는, 독자에게 ‘미래형 도시 실험장’으로서 홍콩의 색다른 면모를 경험하게 한다.

3. 동서 문화가 만나는 길목, 홍콩의 예술과 일상

홍콩은 하루 24시간 내내 변화하는 직소 퍼즐 같다. 아침 6시, 빅토리아 파크에서는 태극권 동작과 함께 새소리가 어우러지고, 구룡 쪽 찻집에서는 전통 홍콩 딤섬이 대나무 찜기에 차오른다. 점심 무렵 귀금속 상점이 늘어선 침사추이는 미슐랭 가이드가 선정한 ‘로컬 맛집’으로 변신한다. 오후가 되면 센트럴의 IFC몰 페스티벌 워크에서는 글로벌 브랜드 신상품 런칭쇼가 펼쳐지고, 밤이 되면 몽콕 시장의 네온사인이 골목을 붉게 물들인다. 이렇게 하나의 도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옷을 갈아입으며, 여행객에게 ‘영화같은 하루’를 선사한다. 홍콩 예술계는 동서 융합의 산실이다. 홍콩 필름 시절 주윤발, 장만옥이 활약하던 영화산업이 정체기에 접어들자, 젊은 감독들은 독립영화와 넷플릭스 시리즈로 무대를 넓혔다. 음악 분야에서는 광둥어 팝이 여전히 사랑받지만, K팝과 EDM, 재즈가 뒤섞인 클럽 신(scene)도 성장 중이다. 미술계 역시 M+ 뮤지엄과 웨스트카오룽 문화지구를 중심으로 중국 현대미술과 국제 미디어아트가 만나는 만남의 장이 열렸으며, 매년 아트바젤 홍콩은 전 세계 컬렉터들이 모여드는 축제가 되었다. 일상에서도 이러한 문화적 다층성은 명확히 드러난다. 한쪽에서는 영화 "식신"처럼 기름기 도는 완탕면을 후루룩 들이키는 장면이 연출되고, 다른 쪽에서는 스타 셰프가 선보이는 분자요리를 맛볼 수 있다. 사원 가판대에서 전통 향을 사고, 쇼핑몰에서는 스마트워치를 결제할 수 있다. 홍콩을 방문하는 독자는 이러한 대비를 체험하며, 고전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공존할 때 탄생하는 시너지를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홍콩의 가장 큰 매력은 ‘끊임없는 중첩’이다. 현대 금융과 고대 신화, 좌충우돌 시장 소음과 무음 전자결제가 같은 공간에서 만난다. 이러한 복합성은 관광객에게는 끝없는 호기심의 대상이고, 현지인에게는 스스로를 규정하는 정체성의 원천이다. 그래서 홍콩 여행은 단순한 소비 활동이 아니라, 과거에서 미래까지 이어지는 시간 여행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