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려 말기의 혼란과 외침
고려와 몽골의 전쟁이 끝난 후, 고려는 큰 혼란에 빠졌다. 백성들은 전쟁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고, 유랑민들이 늘어나며 경제는 침체되었다. 농지 개간이 어려워지자, 왕은 권세가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개간을 장려했다. 권세가들은 이를 이용해 버려진 땅뿐만 아니라, 주인이 있는 땅과 나라의 땅까지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심지어 문서를 조작해 땅을 빼앗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같은 토지에 여러 명의 주인이 존재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농민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사회적 불만이 커졌다.
이 시기에 공민왕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우왕이 왕위에 오르자, 왜선들이 500척의 배를 이끌고 진포에 침입했다. 왜선들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거쳐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이며 곡식을 약탈했다. 이에 신진사대부들은 백성을 보호하고, 국가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성계는 당시 명장이자, 대규모 사병 집단을 보유한 군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계속된 외침과 왜구들의 침입으로 왕권이 약해지자, 이성계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앙 정계에서 권력을 잡기 시작했다.
2. 신진사대부와 이성계의 연대
이성계는 중앙 정계를 쥐고 있는 권세가들과 비교할 때 변방에서 군사력을 키운 인물이었다. 그가 세운 군사력은 고려 왕권의 약화와 외침에 맞서 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성계는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 세력과 연대하면서 점차 중앙 정치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명나라가 중원을 차지하면서, 명은 철령 이북의 땅을 반환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왕과 최영은 명나라의 요구를 거부하고 요동을 정벌하려 했다. 이성계는 이를 반대하며 "요동 정벌 4 불가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왕은 최영의 의견을 따르며 이성계와 조민수를 출정시켰다.
이성계와 조민수의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기 전, 엄청난 비와 전염병이 군사들을 덮쳤다. 이성계는 이에 회군을 제안하며, 결국 반역을 일으키게 된다. 그 결과,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으로 창왕을 왕위에 앉힌다. 이후 신진사대부 세력은 왕권 강화와 토지 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이성계는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며 정치적 기반을 다져나갔고, 권세가들의 영향력을 줄여갔다. 그러나 이성계와 신진사대부 세력은 더 큰 정치적 갈등을 맞이하게 된다.
3. 조선의 건국과 이성계의 갈등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은 여러 정치적 갈등과 충돌을 동반했다. 신진사대부 세력은 고려 왕조를 유지하면서도 중앙 집권적인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 급진파와 온건파 세력의 충돌을 겪게 된다. 정도전은 온건파의 중심인물로서 왕권을 강화하고, 토지 제도의 개편을 통해 국가의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반면, 이성계는 급진파 세력과 손을 잡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계획을 세웠다.
이성계는 결국 1392년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에게 선위 받는 형식으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는 조선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고, 정도전과 조준을 비롯한 개국 공신들을 책봉했다. 그러나 이방원은 개국 공신 선정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진 것에 불만을 품었다.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와 신진사대부 세력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여러 정치적 음모를 벌인다.
이방원은 정도전과 조준을 제거하고, 세자 책봉 문제를 해결하려 하며, 왕위 계승에 대한 갈등이 심화된다. 이방원은 자신의 아들인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으나, 이방석의 형 이방번과 함께 제거한다. 이에 이성계는 혼란스러워하며, 둘째 아들인 영안군 이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정한다. 이후 왕위에 오른 왕은 정종이 된다. 이 과정에서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격화되었고, 이는 조선 초기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성계와 이방원의 갈등은 조선 왕조의 초석을 다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결론
고려 말기와 조선 건국 과정은 권력의 변화와 갈등이 극명하게 드러났던 시기였다.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의 정치적 연대는 고려 왕조의 전복과 새로운 왕조 건국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토지 개혁과 정치적 충돌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결국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성계의 정치적 의도와 그의 아들 이방원의 권력 투쟁은 조선 초기 정치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 사건들이었다. 이방원의 권력 장악은 곧 조선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이는 이후 왕조의 역사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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