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골의 통일과 확장
몽골은 13세기 초까지 작은 유목 집단에 불과했다.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던 몽골은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로 살아갔다. 그러나 1162년, 금나라가 전성기를 맞고 있던 시기, 몽골 초원에서 테무진(후일의 칭기즈 칸)이 태어났다. 그는 부족 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몽골을 하나의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기 위해 통합을 추진했다. 1206년, 그는 몽골의 연합 회의인 쿠릴타이에서 칭기즈 칸으로 추대되었고, 이를 통해 '예케 몽골 울루스'라는 대몽골 제국을 세운다.
칭기즈 칸은 금나라를 비롯한 중국 지역을 정복하면서, 막대한 재정을 확보하였다. 그 후, 그는 서쪽으로 진격해 서진을 시작하였고, 호레즘 왕조를 정복하며 중앙아시아까지 그 세력을 확장했다. 1227년, 칭기즈 칸은 서하를 무너뜨리고 금나라를 공격하던 중 사망했다. 그의 사후, 네 아들인 주치, 차가타이, 오고타이, 툴루이가 각자 제국의 영토를 상속받았고, 대칸의 자리는 오고타이의 아들 귀위크, 그리고 몽케, 그 후에는 몽케의 동생 쿠빌라이에게 이어졌다. 이들은 몽골 제국을 이끌면서, 각각 중요한 전투를 통해 제국의 국토를 넓히고, 제국의 영향력을 더욱 강하게 확장했다.
2. 몽골과 고려의 관계
몽골 제국은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고려와도 얽히게 된다. 1218년, 고려는 몽골과 '형제의 맹약'을 맺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이 맹약은 두 나라 간의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이후 몽골이 요구한 공물이 지나치게 많았고, 이로 인해 갈등이 일어났다. 당시 고려의 집권자였던 최우는 몽골의 사신을 무시하고, 몽골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몽골은 이에 반발하여 고려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1231년, 몽골은 지휘관 살리타이를 선봉으로 삼아 고려를 침공하며, 양국 간의 전쟁은 30년 이상 지속되었다.
고려는 전투 중에도 협상을 시도했지만, 몽골은 강력한 요구 사항을 내걸었다. 첫째, 고려의 국왕이 직접 몽골의 원나라에 조회하러 가야 한다고 요구했으며, 둘째, 고려의 수도를 강화도에서 개성으로 다시 옮기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이에 고려는 태자를 대신 보내 강화 협상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태자는 몽골 제4대 칸 몽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다른 경로로 쿠빌라이 칸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결국 태자는 쿠빌라이와 만났고, 이 만남은 고려와 몽골 사이의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했다.
쿠빌라이 칸은 고려 태자 왕전의 결정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고려는 만 리나 떨어져 있는 나라이고, 당나라 태종이 정벌했으나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그 나라의 세자가 나에게 스스로 귀부해 오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다'라고 하면서 태자를 크게 칭찬했다. 이 만남을 통해 고려는 몽골 제국과 더욱 깊은 유대 관계를 맺게 되었다.
3. 고려와 몽골의 결속과 변화
고려 태자 왕전은 쿠빌라이와의 만남을 통해 강화 협정에 성공적으로 서명하였다. 이 협약에 따라 고려는 원나라의 수호국이 되며, 원나라에 복속되었으나, 고려의 전통과 풍속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또한, 고려는 원나라 황제의 딸과 결혼하여, 몽골과의 강력한 동맹 관계를 맺었다. 이는 두 국가 사이의 외교적 유대를 더욱 강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쿠빌라이 칸은 고려의 고종이 사망한 후,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도록 태자 왕전에게 도움을 주었고, 그해 5월 1일에는 몽골군을 회군시켰다. 이 시점에서 쿠빌라이 자신도 칸으로 즉위하였다. 이후 고려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원나라의 황제는 고려 왕실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 내부에서는 여전히 무신 세력과 왕권 복고를 원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 존재했다. 김준은 무신 정권을 위협하면서 원종을 폐위시키려 했으나, 결국 원나라의 개입으로 원종은 복위되었고, 무신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결국, 원나라의 지원을 받던 고려 왕권은 안정되었고, 원종의 후계자로 충렬왕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충렬왕은 원나라와의 관계를 강화하며, 두 나라 간의 협력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후,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서 국왕이 원나라 제국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지위를 얻었다. 이로써 고려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고려 왕실은 원나라 황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외교와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려는 원나라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체적인 정치적 독립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였고, 원나라와의 관계에서 얻은 이점들을 통해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몽골과 고려의 만남은 단순히 두 나라의 정치적 결속을 넘어서,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했다. 이로 인해 고려는 새로운 시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으며, 원나라와의 협력은 당시 국제적인 외교적 환경에서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알아보아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 말기와 조선 건국: 권력 변화와 정치적 갈등 (0) | 2022.10.28 |
---|---|
고려 왕권 강화와 정치적 변화: 충렬왕, 공민왕 (0) | 2022.10.28 |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형성과 권력투쟁 (0) | 2022.10.27 |
고려 문벌 귀족과 왕권 갈등: 중앙집권과 호족 대립 (0) | 2022.10.26 |
고려와 북방 국가들의 교류와 관계 (1) | 2022.10.26 |